청년 창업 노하우 (임영서의 역사에서 배우는 경영이야기)
1편. 누가 성공하는가!
(이태백이 만난 도끼로 바늘을 만드는 할머니)
[임영서 죽이야기 대표 / 서울교육방송 창업교육위원장]=중국 당나라 때의 시인 이백(자. 태백)을 모르는 한국인은 없을 것이다. 이백은 두보와 함께 중국 최대의 시선이다. 이백이 어린시절 상의산에 들어가서 공부를 하고 있었다. 남성적이고 호탕한 이백은 공부에 싫증이 나서 스승에게 인사도 없이 산을 내려오고 있었다. 산 아래로 향하던 이백은 냇가에서 앉아 바위에 도끼를 갈고 있는 노파를 만나게 된다.
이백은 “할머니 무엇을 그리 열심히 하시는지요?” 라고 물었다.
이 때 할머니가 대답하길 “바늘을 만들기 위하여 도끼를 갈고 있지“라고 했다.
다시 이백이 “그렇게 큰 도끼가 아무리 간다고 바늘이 될까요?”라고 물었다.
노파는 “도끼로 바늘 만들기를 포기만 하지 않으면 되고 말고.. .”라고 대답했다.
이 말을 들은 이백은 큰 감명을 받고 다시 산으로 들어가서 공부에 전념했다고 한다.
나는 누구보다 뚜렷한 인생철학을 갖고 있다. 그것은 바로 [가난과 무식은 내 대에서 끝낸다]이다. 중학교 1학년 때 일이다. 당시 담임선생님은 대학을 갓 졸업하고 부임한 신출내기 여선생님이었다. 그녀는 늘 대단한 승부근성과 이중인격의 소유자였다. 담임선생님은 무엇이든 일등을 해야 만했다. 시험을 봐도 전교에서 우리 반이 무조건 1등을 해야 했고, 체육대회나 영어암송, 응변대회, 가장행렬대회 등에서도 1등을 못하면 자신의 분을 못 이겨 바로 학생들에게 화풀이를 해야 하는 성격이었다.
중학교 1학년 늦가을, 그때 사건을 평생 잊을 수가 없다.
당시 수업료는 1년에 4번을 냈고, 한 번에 약 3만8천 원 정도 했던 것 같다. 가난했던 집안 사정으로 나는 수업료를 가장 늦게 납부해야만 했다. 수업료까지도 우리 반이 제일 먼저 내기를 바랐던 담임선생님께 나는 언제나 미운 오리였다. 마지막 4/4분기 수업료도 기간 내에 못 내고 있었기 때문에 선생님은 나 때문에 수업료를 전교에서 꽁지로 낸다고 항상 면박을 주고 있던 터였다.
어느 토요일. 수업을 마치고 대청소를 하고 있었다. 창문을 내려놓고 유리창 청소를 하던 친구와 이야기를 하던 중, 친구가 뒷걸음질을 하면서 유리를 밟아 깨고 말았다. 잘못은 사실 친구에게 있었는데 담임선생님은 잘못한 친구는 놔두고 나에게만 화를 냈었다. 담임선생은 검정색 테이프가 칭칭 감긴 막대기로 나의 머리와 어깨, 가슴을 향해 사정없이 때리고 찔렀다. 나는 몹시 아파서 막대기를 손으로 막고 선생님께 대들었다.
그때 담임선생은 내게 “수업료도 못내는 놈이 선생님께 대든다”며 칠판 앞에 세워놓고 청소하는 밀대(막대걸레) 자루로 내 엉덩이를 사정없이 때렸다. 나는 교실에 있던 밀대자루가 모두 부러져 나갈 때까지 맞았지만 몽둥이를 피할 생각이 조금도 없었다. 그저 이를 악물고 또 악물며 견뎠다. 눈물은 나지 않았다. 나는 속으로 ‘선생님이 때리는 매에 나는 결코 눈물을 흘릴만한 가치가 없다.’ 라고 생각했다. 그때 나는 “가난”이라는 것에 환멸을 느꼈다.
수업료를 못내서 맞았다고 말할 수 없었던 나는 부모님이 들판에서 들어오시기 전에 일찍 잠이 들었다. 내가 잠에서 깨어난 것은 아마도 저녁 10시쯤이었던 것 같다. 부모님은 가을 추수농사로 피곤해서인지 밥상을 윗목에 밀어놓고 주무시고 계셨다. 농사일이 무척 힘들었는지 그날따라 아버지의 코 고는 소리는 무척 크게 들렸다. 아버지는 한국전쟁 때 이북에서 월남하신분으로 초등학교 2년 중퇴가 학력의 전부이다.
아버지는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마을의 이씨 집안사람들에게 괄시를 많이 받았다. 피난길에 부모형제다 잃으신 아버지께서 어느 날 어린 나에게 “아버지 목표는 언젠가 이 마을에서 아들을 가장 훌륭히 키운 아버지가 되는 것이다”라고 하시며 “너는 자라서 이 아버지보다는 더 훌륭한 아들이 되어야 한다.” 라고 술취하셔서 하셨던 말씀이 기억난다.
나는 그날 밤 내 인생의 목표를 세웠다.
[가난과 무식은 내 대(代)에서 반드시 끝내겠다]라고… ..
그리고 지금까지 그 때의 각오를 단 하루도 잊은 적이 없다.
나는 현제 죽이야기 가맹점 400여개를 운영하는 프랜차이즈 본사 사장이 되었다. 또한 미국, 중국, 싱가폴, 베트남 등 해외에 진출한 한국 음식 프랜차이즈 중 최대의 브랜드가 되었다. 도끼를 갈아 바늘을 만든다는 마부위침(磨斧爲針)의 교훈을 준 이백의 생애는 방랑으로 시작하여 방랑으로 끝났다. 어린 시절 독서와 검술에 정진했지만 이백 자신은 자유를 찾아 세상을 유람만 했기에 출세의 꿈은 이루지 못했다. 이쯤되니 나는 적어도 이백보다는 더 큰 꿈을 이루고 있다고 스스로 돌아본다
많은 사업가들이 크고 작은 목표를 세우고 각자의 노하우를 터득해가며 경영전선에서 거칠고 다소 벅찬 싸움을 하고 있을 것이다. 나는 “가난과 무식은 내 대에서 끝낸다”라는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남모르게 많은 날들을 울었다. 그리고 더 많은 지식을 쌓기 위해 밤을 새워가며 책을 읽고 사업계획을 세웠다.
사업가인 내가 얻은 교훈은 “기업은 경영자의 성장이 멈추는 순간 기업의 성장도 멈춘다”는 것이다. 나는 【죽이야기】를 글로벌 프랜차이즈 기업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도끼를 갈아 바늘을 만드는 이백이 만난 할머니처럼 결코 멈춰서는 안 된다. 성공은 자신이 세운 꿈과 목표를 포기하지 않는 자에게 주는 선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