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보연 정화여상 대표기자 / 문화리더 = 칠백의총 문화지킴이 관광가이드 문화봉사활동 4시간
작가소개 | 조보연 정화여상 문화리더
작가소개 | 서울교육방송 2기 대표기자단
시작하며
책소개
국제문화교류봉사단 소개
국제문화교류봉사단 가입절차
1. 칠백의총을 다녀왔어요
2. 문화재 취재내용
3. 칠백의총
4. 종용사
5. 중봉 조헌선생 일군순의비
6. 칠백의사 순의탑
7. 기념관
8. 일제강점기의 칠백의총
9. 관람 시 주의사항
10. 취재도중 만난 사람과 인터뷰
11. 느낀 점
12. 문화재를 찾아가는 교통편
1. 칠백의총을 다녀왔어요
기록리더 : 조보연
기록리더 학교 : 정화여자상업고등학교
취재 날짜 : 2016년 3월 26일 토요일
취재 장소 : 칠백의총
취재 제목 : 700명의 의사들이 잠든 곳, 칠백의총
취재 동기 : 임진왜란 당시 나라를 지키기 위하여 의병을 일으키신 조헌 장군이 나의 조상님이셔서 이곳을 와본 적이 있는데 조헌 장군을 비롯하여 이름을 남기지도 못하고 나라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쳐 싸워주신 수많은 의병들을 여러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어 이곳을 취재하게 되었다.
2. 문화재 취재내용
칠백의총(七百義塚)은 한자 그대로 700명의 의로운 사람들의 무덤을 말한다. 충청남도 금산군 금성면 의총길 50에 위치하고 있으며 사적 제105호로 지정되어 문화재청에서 관리되고 있다.
3. 칠백의총
-1592년 음력 8월 18일, 권율 장군이 이끄는 관군들과 함께 금산에서 적을 협공하기로 약속하였다. 그러나 왜적의 기세로 보아 절대적으로 열세일 것 같아 작전을 바꾸어 기일을 늦추자는 편지를 조헌 장군께 보냈지만 편지를 받지 못하고 출병하였다. 조헌 장군의 의병부대는 금산 연곤평 싸움에서 필사무퇴의 결전을 벌이다가 모두 순절하였다.
이곳은 조국을 지키기 위해 칠백의사가 1만 5천명의 왜적과 맞서 싸우다가 전원 순절하여 조헌선생의 제자인 박정량, 전승업 등이 싸움이 있은 4일후 칠백의사의 유해를 거두어 한 무덤에 모신 곳이다.
봉분 밑 부분은 판석을 둘러 흙이 흘러 내려오는 것을 방지하였고 그 주위 바닥은 봉분을 따라 다시 돌을 깔았다. 분묘 앞에는 상석을 설치하고 분묘 주위로 담장을 둘렀다.
4. 종용사
-임진왜란 당시 금산싸움에서 순절하신 선열들의 영혼을 모신 21위의 위패가 안치되어 있다. 1647년 사당이 건립되었고 1663년 현종께서 ‘종용사’라고 사액하셨다. 1940년 일제의 항일 유적 말살정책에 의해 훼손되었다가 1952년 복원되었고 1971년 재건립 되어 현재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현재 위패는 나무상자로 덮어져 있으며 9월 23일 제향행사 때만 위패를 볼 수 있다.
5. 중봉 조헌선생 일군순의비
-의병장 조헌 장군이 이끄는 칠백의사가 청주성을 탈환하고 금산 연곤평 싸움에서 순국하기까지의 사적을 기록한 비문이다. 1603년 4월 당시 해평 부원군이었던 윤근수가 글을 쓰고 김현성이 글씨로 새겨 건립하였다. 일제강점기에 금산경찰서장이었던 ‘이시까와 미찌오’에 의해서 비가 폭파되었던 것을 주민들이 일제의 눈을 피하여 땅속에 묻어두었다가 광복 이후 파내어 보관하여 오던 중 1971년 경역 확장 시 그 폭파된 비를 붙여서 비각을 세우고 보존하여 왔다. 2009년 9월에 분리된 상태로 비각 안에 있었던 몸체비각도 목조양식으로 새롭게 개축하였다.
6. 칠백의사 순의탑
-칠백의사 순의탑은 칠백의총 바로 옆(마주보는 위치)에 위치해 있으며 전적지인 연곤평을 내려다보는 현 위치로 1976년에 건립되었다. 이 탑은 13.8m이며 탑신 전면에는 ‘칠백의사순의탑’이라고 한문으로 새겨져 있고 탑신 하부는 화강암에 용이 새겨져 있으며 탑신 상부에는 동으로 만든 창과 방패가 장식되어 있다.
7. 기념관
-기념관은 1976년 건립되었다. 칠백의사의 전투모습을 비롯한 행적을 그린 7폭의 기록화와 칠백의사와 관련된 유물 167점이 보관과 전시되어 있다.
유물은 조헌 장군이 24세 때 문과에 급제한 <교지>와 명나라를 다녀올 때 손수 쓰신 <조천일기>, 선조와 고종황제가 내린 <교서>, 영조의 명으로 발간된 20권 10책의 <중봉전집>, 언행과 업적을 간추려 기록한 <항의신편> 및 목각판, 칠백의사를 추모하여 왕이 내린 <제문>, 주요한 참모였던 이광륜 선생의 공을 높여 왕이 내린 <교지>, 금산 눈벌전투에서 순절한 전라도 의병장 고경명 선생의 업적과 행적을 수록한 <제봉문집> 등이 있다. 6종 7점의 유물은 1989년 8월 1일 보물 제 1007호로 지정되었다.
8. 일제강점기의 칠백의총
-일제강점기의 일본인들이 의총과 종용사를 훼손하고 순의비를 폭파한 후 칠백의총의 토지를 강제로 팔아 경역(경계가 되는 구역)을 황폐하게 만들어 항일유적을 말살하였다. 그러나 광복 이후 1952년에 군민들이 성금을 모아 의총과 종용사를 다시 지어 1963년 1월에 사적 제105호로 지정되었다.
9. 관람 시 주의사항
관람시간은 하절기인 3월에서 10월까지는 9시부터 18시이고 동절기인 11월부터 2월까지는 9시부터 17시까지이다. 관람료는 모든 국민이 무료이며 매주 월요일에 휴관한다. 서울에서 이곳을 올 때는 굉장히 많은 시간이 걸리므로 휴관일을 알고 있다고 하더라도 꼭 다시 확인하기 바란다.
이곳은 대중교통을 이용하여 오기 어렵기 때문에 주차장이 있다. 총 63대의 차량을 주차할 수 있고 장애인용 2대, 경차 3대가 포함되어 있다. 관람요금과 마찬가지로 주차요금 또한 무료이며 14대의 자전거를 주차할 수 있다.
출처 : 칠백의총 안내책자, 칠백의총 홈페이지
10. 취재도중 만난 사람과 인터뷰 :
Q : 이곳을 찾아오시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요?
A : 시댁이 이 근처여서 가는 길에 들리게 되었습니다.
Q : 이곳에 와서 느끼신 것은 무엇인가요?
A : 우리는 대부분 큰 전쟁에 대해서만 알고 있지만 유명하지 않고 잘 모르는 곳에서도 우리나라를 위해 애써주신 분들이 굉장히 많다는 생각이 들었고 관리가 굉장히 잘 되어 있어 내용은 무겁지만 가족들이 방문하기에 좋은 것 같습니다.
Q : 이곳에 잠드신 700여명의 분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A : 감사합니다. 이 말 밖엔 할 수 없는 것 같습니다.
11. 느낀 점 :
-임진왜란 당시 나라를 지키기 위하여 의병을 일으켜 싸우신 분들과 자신의 목숨을 걸고 싸워주신 700여명의 의병들께 너무나도 감사하고 이런 분들을 모신 칠백의총이 관리가 잘 되고 있는 것 같아 다행이었다.
할아버지께 나의 조상님들 중 가장 유명한 분이 누구냐고 여쭤본 적이 있는데 조헌장군이라고 대답해주셨다. 그 때 처음으로 조헌장군에 대해 알게 되었다. 이 곳에 와서 기념관에 있는 유물과 설명을 읽고 나니 정말 대단하시다는 생각이 들었고 나라를 지키기 위하여 자신의 아들과 함께 전투에 참여한 것이 매우 멋있었다. 누구의 식민지가 아닌 한국어를 사용하고 한국인으로 살고 있는 것에 대해 굉장히 감사했다.
이곳이 나의 조상의 묘라는 것이 뿌듯했고 좋은 날씨였는데 충남에 있기도 하고 많은 사람들이 존재를 모르기 때문에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적은 것이 매우 안타까웠다. 입장료도 받지 않고 있어서 이 주변을 가게 된다면 꼭 이곳에 들려 묵념하는 시간을 갖기 바란다. 또한 홈페이지와 안내책자에 이곳에 대한 정보가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어서 홈페이지(http://700.cha.go.kr)에 들어 가보는 것을 추천한다.
이 곳을 둘러보고 안내책자를 읽고 나니 ‘권율 장군의 편지가 제때 도착하여 기일을 미뤘다면‘이라는 생각을 하였다. 통신수단이 발달하지 못하여 정보가 늦게 전달되고 그 결과 자그마치 700여명이라는 사람이 모두 순절한 것이 매우 안타까웠다.
인터뷰를 해주신 분의 말대로 나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은 임진왜란, 병자호란 등 큰 전쟁에 대해서는 알고 있고 관심을 갖지만 유명하지 않은 싸움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우리가 관심을 갖지 않고 잘 모르는 곳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살고 있는 땅을 지키고 나라를 지키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포함한 모든 것을 바쳐 싸운 것에 대해 굉장히 감사한 마음이 들었고 내가 그 당시에 살던 사람이라면 모든 것을 바쳐 싸울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전쟁이 난다면 자신의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싸울 수 있다는 생각들은 많이 가지지만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은 매우 어렵다. 그러나 700여명의 의사들은 말이 아닌 행동으로 보여준 것이 매우 대단하고 감사하다.
12. 문화재를 찾아가는 교통편 :
대전↔금산 노선버스를 승차한 후 새말정류소에서 하차하고 도보로 700m정도 걷거나 택시를 이용할 수 있다. 주요접속도로로는 대전통영고속도로(추부˙금산 IC) 37번국도가 있다. 칠백의총은 이용할 수 있는 대중교통이 매우 적기 때문에 대중교통을 이용하기 보다는 자동차를 이용하는 것을 권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