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은 두 종류다. 이론지식, 경험지식이다. 화학실험은 먼저 지식으로 배우고, 실험실에서 그것을 확인한다. 종이시험을 보고, 실습도 본다. 실제로 그것을 익혀서 겪으면, 그 경험은 평생 잊혀지지 않는다. 이것이 말씀의 성육신이다. 말씀을 행위로 알게 되면, 그 누가 속여도 속지 않는다. 하와와 아담은 말씀을 지식으로 알았다. 지식으로 이해하니, 뱀이 지식으로 속였을 때, 지혜롭게 보이는 그 나무 열매를 먹었다. 행위로서, 말씀을 겪고, 인격과 삶으로 말씀을 살아야한다. 최소한, 입술에서 말씀이 나오도록 날마다 말씀을 묵상해야한다.
예레미아는 왕앞에서 담대하게 “바벨론에 항복하라”고 ‘여호와의 명령’을 전했다. 그 담대함이 어디서 나왔을까? 32장에 보면, 예레미아가 감옥에 갇힌 이유가 나오고, 밭을 산 사건이 함께 기록된다. 얼핏 볼 때, 예레미아가 ‘밭을 산 때’가 시위대 뜰에 갇힌 이후로 여겨지지만, 그것과 상관없이, 시위대 뜰이 있는 법원에서 예레미아는 친척의 밭을 샀다. 그 사건으로 예레미아는 크고 큰 하나님의 비밀을 알게 된다.
“밭”을 샀는데,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밭을 샀다. 그런데, 땅문서가 휴지조각이 된 것이다. 말씀대로 했으나, 부동산 투자에 실패한 예레미아는 하나님께 울며 불며 하소연했다. 전쟁 때문에, 땅문서가 물거품이 됐으니, 하나님께 자초지종을 물었던 것이다. 그때, 하나님은 “바벨론 침공과 포로 귀환”을 약속한다. 그래서, 예레미아는 왕앞에서도 담대히 외친 것이다. 하나님께서 땅을 사게 했고, 그 땅이 똥값이 됐지만, 하나님은 나중에 반드시 쓸 일이 있다고 하셨으니, 바벨론에 항복하고, 후일을 도모하라는 것이다.
바벨론은 ‘재개발 철거팀’이요, 시드기야 왕과 군대들은 ‘세입자 농성대’에 불과하다. 재개발이 확정됐으니, 이주를 해야한다. 입주할 시점이 되면, 바벨론에서 돌아올 것이다. 분양권은 떠난 자들에게 다시 주어진다. 예레미아가 샀던 ‘하나멜의 밭’이 분양권과 같다. 선지가 예레미아가 이스라엘을 대표해서 샀으니, 이스라엘 백성들은 반드시 그 땅을 상속받을 것이다. 하나멜이 예레미아에게 “기업의 상속권”으로 말했다. 상속권은 곧 아브라함의 상속권을 상징한다.
“내가 이것이 여호와의 말씀인 줄 알았으므로” (예레미아 32:8)
예례미아는 “대박”을 기대했을 수도 있다. 전쟁의 기운이 물려와서, 토지가격이 하락되었는데, 하나님께 간구하니 “사라”고 해서, 예레미아는 샀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사라”고 한 것이다. 또는, 예레미아가 뭔가를 놓고 기도했는데, 하나님께서 그 기도의 응답으로 “하나멜이 네게 와서 말하기를 너는 아나돗에 있는 내 밭을 사라”고 답을 줬을 수도 있다. 어쨌든, 하나님의 말씀이 먼저 있었고, 실제로 그 사건이 일어나서, 예레미아는 “내가 이것이 여호와의 말씀인 줄 알았으므로”라고 알고서, 그 땅을 샀다. 하나님께 받은 말씀과 하나멜이 말한 말씀이 동일했다. 그것을 표징으로 삼고, 예레미아는 땅을 구입했는데, 바벨론 군대 때문에 “똥값”이 됐다. 대박이 쪽박이 됐다. 그럴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은 진실하다.
말씀대로 행했을 때, 손해를 본 만큼 축복이다. 말씀대로 행하지 않으면, 축복을 본 만큼 고통이 따른다. 아담과 하와는 지혜롭게 했다고 스스로 믿었으나 말씀을 범해서 얻은 그 유익이 ‘죄’가 되었다. 예레미아는 말씀을 따라 “땅”을 샀고, 그것이 “손실”이 되었으나, 70년을 내다보고서 “믿음”으로 행한 것이다. 그 토지문서는 이스라엘의 상속권을 담보하는 상징물이니, 토기에 묻어서 숨겨버렸다. 믿음의 선지자들은 이런 정신으로 살았다. 믿음으로 살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