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수심판은 ‘홍수의 형벌’로 심판받은 것이다. 창세기 6장에 나온다. 노아가 살았던 지역사회가 모두 심판받았다. 노아는 유일하게 ‘배’를 만들어서 구원받았다. 롯이 살던 소돔과 고모라도 그 지역사회 전체가 심판받았고, 요나 시대에 니느웨 성도 도시 전체가 심판을 받을 위기에 처했다가 회개해서 살아났다. 엘리야 시대에도 북이스라엘 전체가 가뭄의 심판을 받았다. 김정은 정권도 UN의 제재를 받음으로 경제적 심판을 받고 있다.
자유(自由)는 매우 좋은 말이다. 그러나, 자유(自由)가 지나치면, 방종(放縱)이 된다. 스스로 자(自) 말미암을 유(由) 자신이 좋아하는 대로 행하는 것이 죄(罪)가 될 때가 많다. 자기가 하고싶은 대로 한 것이 스토커이고, 강도짓이고, 폭행이다. “왜 때려!”라고 따지면, 힘센 그는 “내 맘이야!”라고 한다. 마음대로 행한 그것이 ‘갑질’이다.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이 좋아하는 모든 여자를 아내로 삼았다. 그 시대 문화를 따르면서, 결혼관습을 준수했는데, 그것이 하나님께 악(惡)이었다.
창세기 2장에서 아담은 하나님이 중매를 선 여자를 배필로 얻었다. 아담은 결혼을 스스로 결정하지 않았다. 즉, 아담은 결혼문제에 있어서 ‘선악과’를 따먹지 않았다. 선악판단의 결정권을 하나님께 맡겼더니, 하나님께서 배필을 정해주셨다. 어떤 종교단체는 여자를 ‘선악나무’로 해석하는데, 너무 편협된 성경해석이다. 에덴동산에 아담이 홀로 있었을 때에도, 하나님은 “에덴동산에 생명나무와 선악나무가 있었다”고 말씀했다. 그때 아담은 ‘결혼문제’에 있어서, 하나님의 뜻에 맡겼다. 이것이 ‘선악과’를 취하지 않은 것이다.
결혼 이후에 아담은 돕는 배필의 조력을 받다보니, 하나님의 뜻을 따라 하지 못하고, 아내의 뜻으로 행할 때가 많았다. 아내를 통해 하나님이 돕지만, 결정적인 사건에서 하나님과 뜻이 어긋날 수도 있다. 그때, 아담은 하나님의 뜻으로 행했어야 하는데, 그렇게 못했다. 결정적인 어떤 사건에 있어서 하나님과 의견이 대립하면서, 아담은 에덴동산에서 쫓겨났다. 하나님이 금지한 그 무엇을 행하므로, 선악과를 따먹은 것이다.
6장에서는 결혼문제까지 자기들의 취향따라, 스스로 선악과를 취하면서, 신앙적인 기준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거룩한 성령의 관점은 생각하지 않고, 세상적 관습으로 하니, 노아 시대의 모든 교회가 그렇게 변질되므로, 하나님께서 심판의 홍수를 보낸 것이다. 남유다, 북이스라엘이 그렇게 멸망했다.
작게는 사람과 사람의 결혼문제, 크게는 국가와 국가의 동맹문제가 그렇다. 결혼도 하나님의 뜻으로 해야하고, 동맹도 하나님의 뜻으로 해야한다. 과연, 북한과 평화를 맺고, 일본과 동맹을 끊는 것이 하나님의 뜻일까? 깊게 고려해볼 문제다. 싫든 좋든, 문재인 정부에게 하나님이 맺어준 돕는 배필(경제적 동반자)이 아베 정권이라면 어찌 할 것인가?
아담과 하와가 함께 선악과(善惡果)를 따먹으니, 그 부부는 에덴동산에서 쫓겨났다. 창세기 6장에서는 그 지역사회가 ‘스스로 좋아서 결혼하는 풍습’이 유행하니, 하나님의 영이 그들을 떠났다. 하나님의 영이 떠나면, 그것이 영적 죽음이다. 에덴동산을 떠나는 것이나 하나님이 그들을 떠나는 것이나 동일한 죽음이다. 하나님이 지금 자신과 함께 하는지, 기도와 찬양으로 하나님을 부르면서 수시로 물어야한다. 하나님은 모든 인생의 참 남편이요, 참 아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