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교육방송 드라마비평 / 장창훈]=‘동백꽃 필 무렵’ 드라마는 소소하다. 옹산에서 영화촬영지로 결정됐는데, ‘연쇄살인범’ 사건이다. 옹산 게장집을 운영하는 게장 회장은 “영화 감독” 욕을 바가지로 한다. “나쁜놈!! 생각이 있는 놈이여, 없는 놈이여!!” 정의(正義)에 가려지는 서민들의 진솔한 이야기가 불쑥 튀어나온다. 가령, 황용식이 고등학교 시절, 은행에 갔다가 엉겹결에 도시락으로 은행강도를 잡은 사건이 있었다. 그때, 용식이 엄마가 경찰서에 불려갔다. 가서보니, 은행강도 이빨이 왕창 부러져서, ‘이빨값 합의’를 하라는 것이다. 은행강도를 잡고, 이빨값을 물어준 용식이 엄마!! 이런 일은 일상에서 빈번하다.
동백은 ▲술집 ▲미혼모 ▲미모 ▲상냥함을 갖췄다. 그것 때문에 옹산의 모든 남자들에게 ‘흠모’를 받는다. 아줌마들의 질투도 그림자처럼 따라온다. 아줌마들의 편가르기에 편들어주는 사람은 오직 옹산 게장 회장밖에 없다. 용식이 엄마도 미혼모였었다. 아빠없이 용식이를 키우면서, 동백의 마음을 이해한 것이다. ‘편’은 무엇인가?
남편(男便)은 내 편이 된 남자이고, 여편네는 여편(女便)으로 내 편이 된 여자를 뜻한다. 부부는 서로에게 남편이며, 여편이다. 서로가 서로의 편이 되어줄 때, 그게 부부다. 동백은 자기 편이 되어줄 남자가 없다. 그때 등장한 인물이 황용식이다. 용식이는 동백이 그냥 좋다. 동백의 편이다. 동백은 자기 옆자리를 쉽게 내주지 않지만, 어느날 우연히 만난 동네 꼬마, 필구의 편이 되어준 용식이!! 알고보니 필구는 동백의 아들이다.
드라마의 극적인 대립은 ▲동백과 용식 ▲강종렬과 제시카다. 동백과 용식은 일상에서 서로 사랑하고, 서로 대화하고, 서로 편을 들어주고, 남들앞에서 싸우고, 이해하면서 살아간다. 반면, 강종렬과 제시카는 남들이 보는 앞에서는 서로 다정다감하게 보일 뿐, 서로에게 애정이 없다. 영상촬영, 방송, SNS에서만 다정한 부부로 나온다. 과연, 부부는 어떤 존재인가? 필구는 아빠의 존재를 ‘오락할 때 옆에서 함께 오락을 해주는 사람’으로 정의한다.
예수님을 만난 사마리아 여인은 남편이 5명이나 있었고, 새롭게 남편을 얻었다. 예수님은 직격탄을 날렸다. “지금 남편도 네 남편 아니다” 누가 사마리아 남편인가? 예수님이다. 영적전쟁에서 우리편이 되어주시는 분은 오직 주님외에 없다. 마음속에서 영생의 샘물이 솟나가게 해주시는 분은 참된 남편 예수님이다. 법률적 남편(결혼), 정치적 남편(권력), 학문적 남편(철학), 명예적 남편(학벌), 예술적 남편을 사랑해도, ‘영생의 샘물’은 나오지 않는다. 우리의 모든 삶속에 곁을 지켜주시는 분은 오직 주님이다. 성령이다. ‘동백꽃 필무렵’을 보면서, 참된 남편의 모습이 더욱 그리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