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에 겨자씨 비유가 나온다. 작은 씨인데, 나중에 자라서 나무가 되면 새들이 깃든다. 인생은 겨자씨 철학을 가질 필요가 있다. SKY캐슬은 피라미드의 세상원리를 설명한다. 피라미드의 주인, 미라는 꼭대기에 있지 않고, 중간 즈음에 위치하며, 피라미드는 결국 미라처럼 방부제가 처리된 시체가 놓여있을 뿐이다. 산 자는 살아있는 들판에 있어야한다. 그것이 겨자씨 철학이다. 예수님도 십자가에 못 박히신 후, 요셉의 무덤에 잠시 있었다가 채 하루도 안되서 부활하셨다. 무덤은 머물 곳이 못된다. 하물며 피라미드랴!! 그 무슨 화려함과 능력과 영예를 자랑하여도 체계가 피라미드라면, 사람을 압제하는 ‘죽은 조직’이다. 사람은 100년 남짓 얼마 못살고, 이 땅을 떠나야한다. 떠날 때, 자유로운 날개로 비상하려면 가볍게 사는 철학을 가져야한다. 이 땅의 것을 즐길지라도 그것에 묶여서 족쇄를 채우면 안된다. 족쇄를 넘어서 감옥처럼, 무덤처럼, 피라미드처럼 군림하면 그곳에 영원히 갇히고 만다. 겨자씨처럼 소소하게 진실하게 살아야한다. 신앙이 있든, 없든, 각자 삶의 밭으로 날마다 아름답게 쟁기질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현실은 영원할 것 같지만, 곧 넘겨질 페이지다. 모든 페이지가 넘겨지면, 인생은 끝나고 남겨진 책은 계속 넘겨질 것이다. 각자 인생의 페이지는 주어진 만큼 살 뿐이다. 돌아갈 시간이 되면 가야한다. 그곳이 어디든, 가야만 한다. 열차처럼, 비행기처럼, 새들처럼 각자의 본향으로.
나는 어디를 가더라도 볼펜과 노트를 꼭 챙긴다. 가져가지 못할 때는 뇌가 노트가 되고, 생각이 볼펜이 되고, 질문이 기록이 된다. 그래서 자주 물으면서 현장에 쑥 들어간다. 이후에 집에 돌아오면 생각에 그물에 걸리는 추억의 물고기 몇 마리 보인다. 그것을 기록하면서 하루를 마감한다. 그렇게 십년 넘게 살다보니, 그런데로 살만하다. 고기잡는 재주는 없지만, 사건을 분석해서 잡아내는 작은 재주가 있다보니, 겨자씨처럼 요긴하게 사용된다. 그것마저 없었다면, 48세 중년의 나이에 어쩔 뻔 했나? 젊은 시절 폭풍속에서도 잘 견딤으로 나를 잘 가꾼 것 같다. 오늘, 감사의 제단을 신께 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