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교육방송 생활칼럼 / 장창훈]=내 취미는 달팽이 양육이다. 날마다 일어나면 달팽이가 어디 숨었는지 한참 찾는다. 양배추와 상추를 주로 먹이를 주는데, 3~4일 정도 지나면 배추잎이 흐물흐물해져서 다시 씻어내는게 여간 힘든 것이 아니다. 고향의 어머니가 김치를 담글 때도 배춧잎을 다듬지 않았는데 달팽이를 위해서 배춧잎을 자주 다시 씻었다.
오늘은 큰 결심을 했다. 근처 꽃집에 가서 ‘식물 주세요’라고 하니, 꽃집 아주머니는 나를 물끄러미 본다. 보통 “꽃 주세요”라고 하는데, “식물 주세요”라는 문장을 처음 들었나보다. 그 아주머니는 “기르시려구요”라고 묻는다. “아뇨!! 달팽이 주려구요!!”
달팽이를 주려고 난초 주변을 왔다갔다 했더니, 아주머니 인상이 약간 찌뿌등하다. 가격이 3만원 정도 하는데, 달팽이가 잎을 먹기엔 아깝다는 표정이다. 달팽이가 먹기에 괜잖다면 무엇이 아까우랴!! 주변을 찬찬히 돌아보면서 습기가 지고, 잎이 부드러운 식물들로 골랐다. 그리고 겨울 내도록 아주머니가 길렀다는 엄청나게 큰 나뭇잎을 가진 식물도 함께 찜했다. 대략 작은 식물 3개와 큰 식물 1개, 가격이 상당히 나왔는데, 삼겹살을 먹은 듯 배가 불렀다. 달팽이는 현재 2마리인데, 1마리는 4달째 컸고 다른 1마리는 현재 2주 정도 되었다. 민달팽이라고 숨기를 잘한다. 원래 뚜껑이 있는 달팽이도 함께 있었는데 중간에 내가 딸기를 주는 바람에 운명을 달리했다. 그때부터 나는 달팽이에게 내가 좋은 것을 주지는 않는다. 반드시 달팽이에게 좋은 것을 주려고 상당히 노력한다. 내가 좋다고 달팽이가 좋은 것은 아님을 알게 되었다.
집에 가지고 와보니, 정말로 잘 샀다는 느낌이다. 보통, 식물을 사서 가져가면 “잘 키우세요”라고 인사를 할텐데, 그 꽃집 아줌마는 내게 “달팽이 잘 키우세요”라고 인사를 건네면서 살짝 미소를 짓는다. 식물의 잎새가 달팽이 먹이가 된다는 그 즐거움은 상추잎에 구멍이 생기는 것처럼 흥겨운 일이다. 이제는 매번 슈퍼에서 양배추를 사지 않아도 되고, 식물들이 방안의 이산화탄소를 없애고 산소를 뿜어내면서 내게도 유익을 줄 뿐만 아니라, 달팽이와도 사이좋게 지낼 것을 생각하니 기쁘지 않을 수 없다.
의미는 이렇게 다르다. 무엇이 보다 중요하냐가 ‘먹이의 질서’가 달라진다. 만약 식물이 중요하다면, 달팽이는 살충제를 통해 죽임을 당했을 것이다. 그러나, 내게는 달팽이가 무척 사랑스럽다. 나와 인연이 있어서다. 나와 얽힌 것이 있는 달팽이라서 내가 상당한 돈을 투자해서 달팽이 집도 마련해주고, 식물도 사서 낑낑 거리며 가져오고, 집안에 한쪽을 내어주면서 달팽이를 배려해준다.
성경에서도 하나님은 천지창조를 마치고서 식물과 동물을 인간에게 주면서 관리하고 다스리면서 먹을 것으로 삼으라고 축복해주셨다. 사람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극단적으로 증명되는 장면이다. 달팽이를 사랑하니, 식물도 달팽이에게 주는 것이다. 그처럼 사람을 사랑하므로 다른 식물과 동물도 사람에게 주는 것이다. 무엇이 보다 중요한지는 항상 기회비용으로 구분된다. 매매(買賣)는 돈과 물건의 주고받음이다. 물물교환에서는 자신이 필요한 것과 자신에게 있는 것이 서로 교환된다. 보다 중요한 것은 항상 간직하고 덜 중요한 것은 매개 수단으로 삼는다. 여기에 ‘의미의 관계’가 존재한다.
과연 가장 최상의 목적으로 두고 사는 것이 무엇인지, 깊게 생각하는 하루가 되었다. 달팽이에게 식물을 주듯이 나는 최종의 목적을 무엇으로 두고서 인생의 삶을 수단으로 살고 있는가? 최상의 목적과 그 가치가 무엇인가? 스스로 깊게 자문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