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시원한 바람을 전달하는 과학기술의 문명장치 정도? 그 이상, 그 이하도 없는, 생명없는 기계장치에 불과할까. 함께 시스템 에어컨을 설치하면, 이 존재의 의미가 나로부터 파생해 조금씩 자라나고 있었다. 의미적 존재다. 벽을 허물듯, 지름 50, 80, 100mm 구멍을 뚫으면, 너머를 통하는 그 작은 터널이 모든 길의 원형으로 나타났다.
그리하여 나는 시스템 에어컨을 사랑할 수밖에, 함께 일하는 동료들이 마음을 합치면서, 먼지를 뒤집어 쓰는 일도 물장구를 치듯 즐거웠다. 그 재미가 나를 붙들었다. 시스템 에어컨 기계가 천장에 메달려 있듯 나를 붙드는 사람과 관계적 정감이 깊고 좋았다.
시스템 에어컨 설치는 하루동안 진행되며, 3명이 함께 힘을 합쳐야 모든 일이 쉽게 끝난다. 곧 삼총사다. 실외기를 베란다 밖으로 넘길 때는 5마력 이상일 때 조심해야 한다. 5마력은 70kg 무게다. 이럴 때는 거꾸로 사다리에 올려서, 베란다 난간에 걸쳐서 넘겨야 한다. 창문은 필히 떼어 작업해야 한다.
동파이프 길이는 타공한 천장 끝에서 7cm 정도 나올 수 있도록 한다. 보온재는 5cm 정도만 벗기는 것이 좋다. 7cm를 하는 이유는 기계장치까지 거리이다. 우측에는 고압, 좌측에는 저압이 위치하고, 중앙 부근에 놓으면 된다.
기계자리 위치를 표시할 때는 전산볼트의 중력을 이용해서 위치를 찾는 것이 제일 간편하다. 수직 수평을 맞출 때는 전산볼트를 잡고서 아래로 떨어뜨리면 수직이 맞다. 만약, 전산볼트 위치가 너무 벗어나면 기계거치와 판넬부착이 어려워진다.
실리콘 마감을 할 때는 구멍 안쪽으로 보온재를 수평으로 맞춰 넣고서, 면을 깔끔하게 정치하는 것이 좋다. 에어컨 설치는 오직 하나, 고객이 보기에 좋게 설치하는 것이다. 설치의 목적은 고객의 생활을 위함이고, 고객은 평생 집에 살면서 에어컨을 보면서 살아야하니, 마지막 마감이 잘 나올 수 있도록 각별히 신경을 써야 한다. 얼굴에 화장을 하듯이 최대한 깔끔하게 하는 것이 좋다.
통신선 껍질을 벗길 때는 가위로 약간 금을 내고 돌리면 쉽게 벗겨진다. 꼭 도라지 껍질을 벗기는 것과 흡사하다. 고객들은 천장 안쪽에 쌓인 먼지에 대해 불안감을 갖고 있다. 선시공하는 사람들은 천장 안쪽을 최대한 깔끔하게 정리하는 것이 좋다.
– 선시공 필요자재
배관 69*2 126*1
통신선 H07*1
PVC 20개, 보온재 15개, 엘보 15개, 소켓 15개, T 10개, 본드, 은박테입
전산볼트, 앙카, 소켓, 너트, 전기단자, 전기테입
메인선*2팔, 에어가이드, 앵글, CD관
칼블록, 나사, 커팅반도
김포현장에 다녀오면서 챙긴 자재 목록이다. 팀장이 내게 목록을 자세히 알려줘서 빠짐없이 챙길 수 있었다. 한강 소설가의 새로운 기적, 노벨문학상 소식이 우리의 하늘에 단풍지듯 날아 들었다. 내게는 날마다 연필을 들어 기록할 작은 수첩과 쓸거리가 있음이여! 이 또한 내게 영원하리니, 불편한 언쟁이 내게 있었으나, 나는 먼저 마음을 풀어냈다.
그저 살아가는 일이 둥글게 조약돌처럼 부데끼며 사는 것이기에, 부딪힘은 소리를 만든다. 곱거나 거칠거나, 그런 소리들의 집합이 곧 인생의 음악으로 남겨진다. 현장에 도착했더니, 먼저 도착한 작업자들이 에어컨 기계들을 꺼내놓고, 기계자리에 타공까지 마친 상태였다.
1400*470으로 타공한 곳에는 60mm를 떨어뜨려서, 표시를 해야하는데, 45mm로 하는 바람에 기계자리를 거치하는데 전산볼트 간격이 맞지 않아서 애를 먹었다. 타공하기 전에 타공위치를 거듭 확인하는 것이 작업자의 확인정신이다. 특이한 것은 실외기로 들어가는 구멍이 2개라는 것이다. 기존에는 무조건 실외기로 들어오는 구멍이 1개로만 알았다. 2개일 수도 있다. 게다가 정확한 위치를 찾아서, 베란다에서 직접 구멍을 뚫으니, 천장타공을 하지 않아도 되었다.
한 사람은 실외기, 다른 한 사람은 드레인, 나는 타공과 외부정리, 전산볼트를 맡았다. 석고마감도 내가 진행했다.
함께 일한 에어컨 전문가가 알려주길, “사라를 내는 것은 표준화가 필요하다. 모든 직원이 동일한 장치를 사용하지 않는다면, 표준은 불가능하다. 수동 사라기를 사용하면서 누구나 동일한 크기로 사라를 내길 요구할 수 없다. 자동 사라기는 초보라도 전문가와 동일한 모양으로 사라를 낼 수 있다. 이것이 공정의 표준화이며, AS를 줄일 수 있는 방향이다. 에어컨 분야에는 현재 이런 표준화가 없다. 그래서 가스 누설이 자주 발생한다. 가스 누설은 실상 진공을 5토르로 잡아서 테스트하면 금방 알 수 있고, 질소 테스트를 해도 알 수 있다”
**** 드레인에 본드를 바르지 않으면, 물이 새면서 결국 천장을 망치게 되고, 고객불만이 폭발한다. 아침 일찍, 6시에 일어나 집을 출발해, 김포에 9시에 도착했다. 아주 먼 거리였다. 고객 AS를 해결하려고 김포 현장에 도착했더니, 900*1000mm 크기로 석고를 마감해야 했고, 몰딩까지 흔들거렸다. 준비해온 다루끼를 활용해서 우선 고정대를 마련해 나사를 박고, 석고 900*1200을 인근 철물점에서 구입해, 모든 작업을 마쳤다. 밑작업을 하는데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걸렸다. 평상시에 석고마감 밑작업은 2분 가량 걸리는데, 여기서는 1시간 가령 걸렸고, 석고마감도 1시간이 넘게 걸렸다. 석고마감은 가능하면 얼마나 적게 재단을 하느냐로 시간이 절약된다.
토요일에 일을 한다는 것은 사람을 지치게 한다. 특히, 직원의 입장에서는 업무의 무게감이 2배가 가중된다. 직장 상사, 또는 사장이 직원의 고단함을 체감하지 못한다면, 직원은 버티지 못하고 철새처럼 떠날 수 밖에 없다. 철새조차 텃새처럼 정착해 머물 수 있는 그런 근무환경이 조성된다면 회사는 소나무처럼 푸르게 성장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