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터가 죽고 독일은 엉뚱한 방향으로 흘렀다. 루터는 경건과 신학을 두 기둥으로 해서 종교개혁을 일으켰는데, 루터의 제자들은 스승의 신학을 집대성하면서 ‘경건’을 철저히 배제하고 신학만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독일교회를 장악한 대부분의 성직자들은 루터의 후예들이었고, 그들은 루터의 조직신학을 연구해서 설교단상에서 얼마나 쉽게 설명하느냐에 집중했다. 이러한 설교집은 출판물을 통해서 출간됐다. 결국, 성직자의 설교는 성도들의 신앙을 위한 것이 아니고 루터의 조직신학을 설명하는 자리였다. 누가 얼마나 쉽게 루터의 조직신학을 설명하느냐, 설교자의 목표가 여기에 있었다.
슬프게도 당시 독일은 30년 전쟁에 휩싸였고, 수많은 사람들이 남편과 자식을 잃었고, 생존은 엉망진창이 되었다. 성도들은 마지막 희망으로 하나님을 붙잡기 위해서 교회를 찾았으나, 성직자들은 성도의 눈물을 철저히 외면하고 오로지 루터만을 외쳤다. 루터는 성도의 슬픔을 위해 종교개혁을 외쳤는데, 루터의 후예들은 성도의 슬픔을 외면하고 루터만 외쳤다. 경건이 배제된 루터의 조직신학은 공허한 메아리가 되고 말았다. 학문에 도취된 성직자들이 독일교회를 이렇게 추락시켰다. 그들은 걸핏하면 서로를 향해 신학적 논쟁만 벌였고, 이신칭의가 옳으냐, 삼위일체가 옳으냐, 선행과 은혜가 서로 몇 %가 되느냐는 식으로 지식적 논쟁만 벌였다. 그러한 싸움에 루터의 조직신학이 활용됐다.
이때, 요한 아른트가 ‘참된 기독교’라는 책을 출간했다. 그는 독일교회가 무엇이 문제인지 철저하게 비판하면서 ‘루터의 본질’을 다시 제시했다. “믿음은 교리에 있지 않고, 하나님을 어떻게 만나고, 신앙적 체험을 하고 있는가, 거룩한 삶을 어떻게 살고 있는가에 있다” 당시 독일교회는 신조열광에 매몰됐고, 경건이 사라진 종교개혁의 후예들에게 아른트의 책은 서광으로 비쳤다. 슈페너는 아른트의 영향을 받은 인물로서 훗날 ‘경건한 열망’이란 책을 출간했다. 슈페너는 책을 통해 6가지를 지적했다.
1. 독일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풍성하게 전해야 한다.
2. 종교개혁의 유산은 만인 제사장이다. 평신도의 가치를 회복해야한다. 신학중심의 교회운영은 성직자 중심일 뿐, 평신도의 가치를 떨어뜨린다.
3. 신앙은 ‘앎’이 아니고, ‘행동’에 있다. 기독교의 방향은 지식이 아니고 행동이다.
4. 공허한 종교적 논쟁을 더이상 하지 말고, 기도와 사랑을 통해 신앙적 모범을 보여야 한다.
5. 신학교육은 오로지 신앙과 실천을 뼈대로 해야한다.
6. 설교를 신학적으로 하지 말고, 단순하고 쉽고 짧게 해야한다. 지성적 설교는 지루하다. 성도의 심장이 뛰는 설교를 해야한다.
슈페너의 유산은 훗날 교회속 작은 교회를 만들게 했다. 소모임을 통해서 평신도가 성직자로 활동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설교보다 소모임이다. 설교를 짧게 하고 소모임을 통해 평신도가 말하게 해야한다. 이것이 구역모임의 원조다. 소모임을 통해서 일주일간 삶을 나누고, 기도하면서 성경을 통해 서로 의견을 나누면서 공동체로서 영성훈련을 한다. 만인 사제설이 현실로 이뤄진 것이 교회안의 작은 교회, 즉 구역모임을 통해서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