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은 광야의 백성이다. 즉, 디아스포라다. 흩어짐은 레위에게 야곱이 예언한 ‘운명의 족쇄’였는데, 이스라엘 전체의 운명이 되었고, 모아짐과 흩어짐의 반복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은 지금도 광야의 민족으로 남겨졌다. 인류는 결국 광야에 서있는 한 그루 나무로 살다가 하늘나라로 가는 것이다. 인생 100년, 광야 인생이다.
바쁘게 살 때는 세상속에서 질주하고, 빠른 속도로 승진을 꿈꾸면서 바벨탑을 쌓듯 그렇게 살아간다. 그러나, 그것이 고속도로를 질주하는 삶일 수도 있다. 고향으로 가는 길은 도착했을 때, 어머니가 환한 미소로 맞이한다. 고속도로의 빠른 속도가 유익한 것은 어머니의 미소 덕분이다. 석양에 해가 지듯, 십자가의 가치가 마음에 떨어지면, 그때 인자의 영광이 드러난다. 문명은 결국 떠나야할 이집트요, 해방을 바라는 바벨론이요, 십자가를 결정한 유대교다.
나는 지금 까페다. 빠르고 경쾌한 음악이 내 고막을 때리고, 내 옆좌석은 계속 사람들이 바뀌며, 텅빈 좌석이 계속 놓여있을 때도 있다. 이제, 나는 이곳을 곧 떠날 것이다. 문명은 까페와 같다. 곧 떠나야한다. 그때가 오기까지 나는 여기서 무엇을 할 것인가? 내가 하고싶은 일을 할 것이며, 눈을 감고 성령의 감흥을 받아 보다 성경적이며, 성령의 감동으로 글을 쓸 수도 있고, 참을 수 없는 감동으로 성경을 읽을 수도 있다. 사람은 성령으로 살아야할 운명이다. 육체는 땅을 떠날 수 없듯, 영혼은 성령을 떠날 수 없다. 성령을 떠난 영혼은 죽는다. (에덴동산을 떠난 아담과 하와는 먹고 사는 일의 축복만 받았고, 하나님을 섬기는 일은 사라졌다. 아담의 죽음은 사명의 박탈이다.)
이스라엘 민족은 하나님께서 함께 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함으로 세상적 축복을 받은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함으로 세상적 고난도 받고, 축복도 받고, 버려짐도 당하고, 세상적 영광도 받고, 높음과 낮음을 모두 경험하면서, 포로로 끌려가서 그곳의 통치권도 얻으면서 그렇게 살아갔다. 하나님이 함께 하면, 광야의 삶을 살게 된다. 정착민족이 아니다.
두로와 시돈은 해양민족으로 영국과 스페인처럼 해상권을 장악했고, 가나안과 블레셋과 이집트 민족은 정착민족으로 중국처럼 농경문화로서 군사권력을 유지한다. 해양민족과 정착민족 사이에 샌드위치처럼 낀 민족이 이스라엘이다. 이스라엘은 광야의 샌드위치다. 하나님을 믿는 성도는 광야에 위치한다. 세상문명에서 약간 떨어져서, 하늘을 바라보는 곳, 그곳이 광야다.
거듭 말하자면, 예수님은 권력을 뺏기 위해 오시지 않았다. 헤롯정권을 베드로가 차지했다면, 그것은 자리바꿈의 카드 돌려막기에 불과하다. 헤롯정권이 예수님과 함께 군사정변을 일으켜서, 로마제국을 물리쳤다면 그곳에 지상천국이 세워지는 것이 아니다. 지상지옥이다. 예수님은 권력을 뺏기 위해 오시지 않고, 권력을 초월해서 하나님을 섬기는 ‘예배자’로서 이 땅에 오셨다. 대제사장으로서 왕의 권력이다. (천주교의 교황권과 전혀 다르다. 그들은 세속권력으로 변질되었다. 천주교가 하나님의 나라를 성취했다면 루터의 종교개혁이 없었을 것이다.)
하루의 시간은 땅과 같다. 어디에 있는가? 아담아! 네가 어디에 있느냐? 광야에 있어야한다. 아담은 나무뒤에 숨었다. 광야에 있어야 한다. 아무 것도 없는 허허벌판, 그곳에 한그루 나무처럼 살아가는 것이 인생의 운명이다. 아무 것도 없으니, 창조주께서 있게 하신다. 아담이 배우자가 없으니, 하나님께서 배우자를 데려 오셨다. 돈이 없다면, 하나님께서 있게 하실 것이요, 집이 없다면, 하나님께서 있게 하실 것이요, 능력이 없다면 하나님께서 성령의 능력을 주실 것이요, 지혜가 부족하다면 하나님께서 지혜를 주실 것이다.
하나님을 향하는 광야에 홀로 서있는가? 정착한 세상을 떠나라! 하나님께서 사람을 오늘도 부른다. 갈대아 우르에 갇힌 인생을 불러, 성령의 숨결과 자유를 주시려고, 각 사람을 매일 부르신다. 소년 다니엘은 하나님을 섬김으로 지혜를 얻었고, 할아버지 다니엘이 되었어도 하나님을 섬기는 그 정신은 변함이 없었다. 다니엘은 소년때부터 할아버지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을 향해 ‘광야의 인생’을 살았다. 광야의 다른 이름은 디아스포라, 흩어짐이다. 사람들은 바벨탑을 쌓고 그곳에 정착하길 원하지만, 하나님은 흩으신다. 흩으심이 창세기 1장의 둘째날 ‘물과 물’의 나뉨이다. 물과 물이 나뉨으로 궁창이 생겼다. 궁창이 곧 하늘이다. 물과 물을 나누고, 물과 뭍을 나누는 것이 하나님의 창조역사다.
[창1:6] 하나님이 이르시되 물 가운데에 궁창이 있어 물과 물로 나뉘라 하시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