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23장에는 3개의 십자가가 나온다. 예수님의 십자가, 비방의 십자가, 변호의 십자가이다. 두 강도는 각각 자신의 입장에서 예수님을 다르게 봤다. 비방하던 강도는 “구원하라”고 명령하면서 비방했고, 예수님을 변호하는 강도는 “구원하소서”라고 부탁하면서 예수님을 변호했다.
죽음의 십자가는 인생의 종결점이다. 나무 형틀의 사형수 판결을 받지 않았어도, 모든 인생은 태어나는 순간 ‘죽음의 판결선고’가 내려진다. 비관론적 입장일지 모르겠으나, 죽음은 도둑처럼 예고없이 찾아오는 불청객이다. 인생은 ‘탄생과 죽음으로 결합된’ 십자가에 메달린 존재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느냐, 하나님을 멀리 하느냐.
나는 날마다 성경을 묵상한다. 성경속에서 현재 살아있는 자들은 아무도 없다. 모두 죽은 자들의 책이다. 그런데, 나는 뉴스보다 성경이 좋다. 나도 언젠가 죽을 것이 분명하고, 명약관화(明若觀火)하므로 성경속에서 죽은 자들이 어떻게 살아냈는지 그것에 눈길이 간다. 예수님과 함께 메달렸던 어떤 강도들은 ‘살인죄’로 기소되었을 것이다. 독립투사로 분류되는 그들은 IS와 같은 무장독립투사들이다. 죽음앞에서 그는 자신이 살아온 삶을 스스로 평가하길, “우리는 우리가 행한 일에 상당한 보응을 받은 것”으로 겸허히 참회했다. 그 강도는 예수님을 바라보며, 기도의 심경으로 부탁했다.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기억하소서”
감옥에 갇혔던 요셉이 술관장의 꿈을 해몽하고, “당신이 잘 되시거든 나를 생각하고 내게 은혜를 베풀어주소서. 나를 건져 주소서”라고 했으나, 그는 2년이 지나서야 요셉을 사면시켰다. 사람은 자유를 책임지지 못한다. 예수님은 강도의 부탁을 받자마자,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고 하셨다. ‘오늘’ ‘나와 함께’ 그 강도는 구원받았다. 예수님께 간절히 기도하고, 죄를 회개하고, 예수님의 나라를 사모하면, 예수님은 동일하게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고 말씀하신다. 예수님은 지금 현재 말씀으로 우리와 함께 하신다. 예수님과 함께 있는 그곳이 곧 ‘낙원(樂園)’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