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교육방송 교육칼럼 / 장창훈]=심장(心臟)은 마음을 흥분(興奮)시키는 오장이다. 마음은 곧 혈액(血液)과 밀접하게 연결되면서, 마음은 곧 심장의 등식이 성립할 수 있다. 심장은 평생 쉬지도 않고 뛴다고 알고 있지만, 전문의학 지식으로 논한다면 심장도 쉰다. 영원히 쉬면, 곧 죽음이고, 평소에 쉬면 심장의 생명력이다. 심장은 심장의 속도로 뛰면서 아주 잠시 쉬면서 뛴다. 그 쉼이 아주 짧은 찰나이지만, 매번 쉬므로 심장은 지치지 않은 것이다. 게다가 사람들에게 들키지 않고서 평생 ‘근면한 오장’으로 인정까지 받는다.
달팽이의 속도와 관련해 얼마나 빠른지 내가 논한 적이 있다. 이렇게 빠른 달팽이도 대략 20cm를 빠르게 질주하면 반드시 몸을 웅크린다. 사람이 100m 달리기를 하고서 숨을 헐떡이듯이 몰아쉬는 것을 달팽이의 모습에서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1시간 넘도록 달팽이는 잠을 잔다. 다른 곳에서 다른 일을 하고 집에 돌아오면 달팽이도 잠시 산책을 다녀오고 다른 곳에서 몸을 웅크리고 있다. 자리를 옮겼다는 것은 일어나서 움직였다는 것이다. 달팽이도 달팽이로서 안식의 쉼을 얻는다.
창세기에도 보면, 하나님의 창조사역의 속도는 엄청나다. 6일을 거의 쉬지 않고 일하는 모습은 어떤 건설사의 건축공정과 비교가 안된다. 매년 애플이 새로운 스마트폰을 업그레이드하고, 현대차가 매년 신형차를 새롭게 뽑는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의 창조사역과는 전혀 비교가 안된다. 하나님은 빛을 만드시고 이후 만물, 식물, 동물, 인간창조를 단계별로 쉬지 않고 행하셨다. 6일째 되는 날에는 동물창조후 바로 인간창조까지 진행했다. 얼마나 빠른 속도인지, 창세기를 읽다보면 긴박감은 100m를 거의 0.1초에 달렸다는 느낌이다. 그리고 7일째 하나님은 안식하셨다. 일의 낙은 쉼과 함께 존재한다. 사람이 살아가는 낙은 ‘일’과 ‘쉼’이다. 숨쉬는 것도 결국 날숨과 들숨이 함께 연결되면서 호흡활동이 진행된다. 모든 인생은 그와 같다. 일은 움직임이고 쉼은 움직임을 멈추면서 정리하는 것이다. 잠은 달팽이의 웅크림이고, 일은 달팽이의 기어감이다. 웅크림과 기어감의 반복을 통해서 달팽이는 달팽이로서 최대한 수명을 살아간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쉼에는 두가지 종류가 있다. 하나는 길게 쉬는 것, 다른 하나는 틈틈이 쉬는 것이다. 보통 학교에서 50분 수업을 하고서 10분 쉬는 것도 두뇌활동을 잠시 멈추고서 쉬라고 하는 것인데, 이때 학생들은 더 떠들면서 수업이 잠자는 시간으로 변경될 때도 있다. 본래 취지는 두뇌활동을 하는 수업시간과 잠시 쉬는 시간이다.
한자로 쉼은 휴(休)이다. 사람과 나무가 합쳐진 글자이다. 나무밑에 사람이 앉아서 쉰다는 의미가 있다. 내가 살던 고향에서도 나무를 지게에 해서 잠시 나무그늘에 쉴 때도 있고, 더운 여름에는 큰 나무그늘에 사람들이 모여서 항상 대화를 나누면서 안식을 취했다. 休가 그러한 글자이다. 성경적으로 휴(休)는 사람과 나무가 합쳐져서 곧 생명을 주는 나무로서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몸은 눈을 감고 잠시 자면 피곤이 풀린다. 그러나 마음이 지치고, 영혼이 곤비(困憊)하면 잠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영혼의 피곤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사람을 만나야 풀려진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나의 하나님께 내 영혼을 맡기며 달팽이처럼 조금 더 가까이 그에게 다가갔다.